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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수기

[17기 네팔] 저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

서울여대 김선아


길을 가다가 노숙자 할머니의 손 위에 동전 몇 개를 쥐어드릴 때, 친구가 옆에서 말했다. “저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 그런 사람들한테 왜 돈을 쥐어줘. 차라리 버리고 말지. 저 사람들은 그냥 거리의 쓰레기야.” 그때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한국이란 나라에 태어났고 태어나보니 돈을 벌어다 줄 아빠와 밥을 지어줄 엄마가 있었다. 그 두껍고도 따뜻한 지붕 아래에서 자라온 내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세상에는 사고도 많고 고통도 많고 아픔도 많고 가난도 많고 슬픔도 많다. 그 많고 많은 회색빛 일들 중 내 눈앞에 닥쳤던 일들은 얼마나 될까. 고작해야 원서를 넣었던 대학에 떨어졌다거나, 좀 더 커진다면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일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뼈저린 고통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친구가 말했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텔레비전 속에서 보이는 가난 안에서 힘겨워하는 사람들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노력은 나의 것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친구가 그 말을 뱉었을 때에 나는 당장 받아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힘든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줄 줄은 알았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란 결론을 얻고 어디로든 그들을 이해해볼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음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친구에게 내 행동에 대해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싶었다.


왜 네팔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다. 히말라야가 있는 그 아름다운 나라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했을까. 아니면 단순히 그냥 눈 덮인 히말라야가 보고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열여덟명의 팀원들, 매니져님, 단장/부단장님이 함께 네팔로 떠났다. 다딩이라는 작은 도시 그리고 산 꼭데기의 한 학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서관을 만들고 언덕을 오를 계단을 만들고 3일간 수업을 진행해주는 작은 일들이었다. 이 일들을 앞두고 나는 큰 착각에 빠져있었다. ‘나는 봉사자이고 그들을 도와주러 가는 사람이다’ 하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봉사하겠다는 의욕과 다짐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말한 일들처럼 나는 느껴보지 못한 세상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들이기에 고통 받지 않는 나는 그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결심이 무색하고 창피하게도 큰 도움을 얻은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맑은 눈을 가진 그곳의 아이들에게 내가 다녀간 일은 어린 시절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3일정도 수업을 해주고 간 정도일 것이다.

누군가들이 와서 알록달록한 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잠깐 우리와 즐겁게 지내다 갔구나. 그 일들이 결코 작은 일은 아니지만 그 일로 그 아이들의 인생이 180도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은 2주간의 일들로 커다란 파장이 생겨 22년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마음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남은 삶을 그 마음의 이끌림으로 살아가겠다고 180도 다른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살아가기 위해 내가 했던 노력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삶을 진행시킨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것도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가족 그들의 나라가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길거리에 앉아 돈을 구걸하는 늙은 할머니의 삶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서려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다했던 노력이 얼마나 수없이 세상 끝에 버려졌을까를 생각하면 목구멍 어딘가가 바싹 마르는 듯 했다.

누군가들은 뉴스에 나오는 최빈국들의 모습을 보며 후진국들은 아직도 멀었다고 불쌍하다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회색빛에 뿌리고 있는 총천연색의 희망을 내 눈으로 보았기에 더 이상 앉아서 지켜보며 혀를 찰 수만 없게 되었다. 한 번도 삶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해본 적은 없지만, 나처럼 좋은 환경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희망과 절망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캠프에서 알게 되었다.

네팔에 잠깐 다녀왔고 내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고 해서 매일 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방에서 잠드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지 못한 이들이 멀지 않은 내 옆에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회색빛이 거두어 지는데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


아직도 봉사라는 것이 내게 어떠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겠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젠 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해야할 것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니코틴이나 알코올보다 훨씬 중독성 있는 사람과 사람이 가진 온기를 나누는 이 ‘봉사’라는 것이 앞으로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 삶에 대한 노력을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노력 없이 살아온 나이기에 적어도 그들에게 노력을 위한 응원을 해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응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당장 올해부터 그 응원하는 삶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아마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이기에 그때마다 누군가를 도우러가겠다고 큰 소리치고 응원을 떠나고 돌아올 땐 뒤통수를 긁적이며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받고 왔다고 베시시 웃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만이 내가 노력 없이 삶을 선택받은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가장 큰 길이다.

이를 통해 나이가 들고 흙속으로 돌아갈 때에 내 삶은 비록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노력으로 처음부터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삶의 노력에 응원이 되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