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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M 이슈/GPM People

쉽게 끝나지 않았던 네팔앓이


네팔과의 첫 인연, GPM CAMP

대학생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꿈꾸던 해외봉사.

처음엔 나 또한 그랬다.

누군가 “ 왜 해외봉사를 하려하지?” 라고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그냥”이다.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해 보고 싶고 어렸을 적부터 막연히 꿈 꿔오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2011년 1월에 덕성여자 대학교 해외봉사단 16기를 통하여 네팔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덕성여대 봉산단원이 되기 전까지 네팔이 최빈국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알지 못했다.

네팔로 향하기 전 준비를 통해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던 곳.

그리고 네팔 도착.

해외에 나간 본 경험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에게 네팔 공항은 상상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공항에서부터 화장실, 바깥 풍경, 건물,  길가에 에베레스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들까지..

네팔의 첫 인상은 “우와~” 가 아닌 시작도 전에 ‘앞으로의 일정을 어떻게 버티지?’ 였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잠시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는 네팔 친구들이 있어 이러한 걱정도 금방 사라졌고, 

그리고 다딩에 도착한 우리. 다딩에서도 역시 많은이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활동 시작! 우리가 한국에서 약 3개월 동안 준비해 온 것들을 아이들과 공유 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미술팀에 속해 아이들과 함께 탈만들기, 스크레치아트, 종이접기 등의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통하고 어색함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것도 잠시 우리는 서로 금방 친해 질 수 있었다.

오전의 교육봉사를 마친 뒤에 오후에는 노력봉사를 하였다. 담장에 낀 오래된 이끼를 긁어내고 다시 깨끗한 페인트를 칠하는 것.


다딩에서의 일주일간의 이러한 봉사들은 나에게 작은 감동 그 자체로 남아있다.

교육봉사 때 우리가 실수로 준비물을 놓고 가면 꼭꼭 챙겨서 갖다 주는 아이들,
수업이 끝난 뒤 항상 뒷정리 같이 해주는 아이들,
두번째 만남에서 우리를 기억하고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아이들.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너무 고맙고 우리의 하루하루를 뜻 깊게 만들어 주었다.

노력봉사 때 역시 우리를 기억해 주고 오는 아이들 때문에 힘든 일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고 아는 정보 하나 없는 나라 네팔에서 나는 정말 돈을 주고도 못 살 엄청 난 경험과 많은 것을 받고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쉽게 끝나지 않았던 '네팔 앓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이 ‘네팔앓이’는 쉽게 끝날 기미가 안보였고 나는 이 여운이 가시기 전에 내가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보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다시 네팔로 5~6개월간 아이들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한 치의 고민 없이 ‘OK’


네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했던 ‘1년 안에 다시 네팔가야지’ 라는 다짐을 이루게 된 것이다.

1년도 안되 다시 찾은 네팔은 그 소음, 그 냄새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의 느낌은 처음과는 너무 달랐다. 충격이 아닌 행복이고 기쁨이고 익숙함 이었다.

나는 네팔 살라히 지역의 있는 아동센터에서 5개월간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며 아이들에게 흔히 접할 수 없는 음악 수업을 하게 되었다.

봉사단 몇 십 명 중의 한명이 아닌 나 혼자 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걱정도 조금 있었지만그 걱정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과 같이 음악수업을 하며, 밥 먹으며, 운동하며 생활을 함께 하면서 적어도 내가 주는 사랑의 30배의(왜냐면 아이들이 30명이니까!)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간혹 가다 내가 실수를 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를 해도 아이들은 괜찮단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그러던 중 작년에 갔던 다딩의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 아이들 역시 1년 사이에 많이 커 있었다. 나는 그곳의 사람들이 ‘과연 나를 기억해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교의 아이들이며 같이 봉사했던 네팔 친구들,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 까지도 나를 기억 해 주셨다. 그 때의 그 기분은 도저히 말로도 글로도 설명이 안 된다. 그리고 네팔에 1,2주가 아닌 몇 개월을 지내면서 모든 것이 내 생활이 되어 조금은 나태해진 내 자신도 돌아 볼 기회도 되었다.


살라히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을 위해 나를 위해 더욱 파이팅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5개월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다짐했다.


‘또 다시 네팔가야지!’